Curl Up Black Cat 키티일기장

 

※ 주의 소재: 주인수를 포함한 섬노(여캐 있음)에게 가해지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과 방관, 잔혹한 살인/고문/인신매매/마약 등의 범죄 묘사...

그리고 경고까진 아니지만 욕설 다수.


만 오천명이나 별점을 남긴 스테디셀러를 드디어 읽었다.

 

이름은 익히 들었지만 작품 설명 속 소재를 보고 머뭇거리다가-대충 폐쇄적 시골 K감성- 새벽의 힘을 빌려서... 

소개 키워드를 보면 #구원물 #힐링물 이 포함되어있는데, 부정하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이거다 싶지도 않은... 완독 후의 심란함.

물론 나는 아주 쉽게 심란해지는 사람이다. 작품 후기에 작가님이 이 소설을 (결과적으로) 이미 악에 갇혀 살던 캐릭터라 그보다 더 큰 악이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었던 캐릭터가 그렇게 구원받아 진심으로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목표로 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납득이 어렵진 않다. 실제로 지켜보는 나는 몰라도 주인공들은 행복하다. 주인공들이 행복하다면 나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서도... 아니 그래도 말이지

 

※이하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라 접어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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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해피엔딩을 좋아하고 메리 배드 엔딩도 좋아한다. 하지만 역시 씁쓸하다. 괴롭진 않은데 잘 읽은 것과 별개로 자꾸 한숨이 난다... 비슷한 기분을 모 비엘 소설을 읽었을 때도 느꼈는데(읽기 전 경고가 좀 필요한 작품이라 제목을 굳이 언급하진 않음) 둘을 비교해보면 이 개인적인 심란함은 아마 소설의 전개보다는 그 이전~ 캐릭터의 배경에서 비롯된게 아닐까 싶다. 마침 얼마 전에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다시 시작했다. 현재 절찬리 감성좇아 삼만리 중인 신형철 교수님의 책인데, 이 책의 책머리만 지나면 '나의 없음을 당신에게 줄게요_사랑의 논리'가 나온다. 빈약한 어휘를 같은 글의 몇 가지 인용에 기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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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받기 시작하면 우리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새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의 사랑은 질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이 질문과 더불어 내 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서서히, 어떤 일이 벌어진다. 그 일은 스피노자가 말한 두 가지 방향을 따를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커지거나 작아진다. 내 안에 비어 있다 생각한 부분이 채워지면서 커지거나, 채워져 있다 생각한 부분이 사실 비어 있었음을 깨달으면서 작아지거나. 후자의 변화, 즉 타인의 사랑이 내가 나를 더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결여를 인지하도록 이끄는 것, 바로 이것이 나로 하여금 타인의 사랑에 응답하게 만드는 하나의 조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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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진실은 반대라고 말해야 한다 이 특수한 상황이 오히려 사랑의 일반논리를 더 뚜렷하게 만든다고 말이다. '장애'라는 요소는 사랑의 논리학에서 결정적인 요소인 '결여'의 은유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영화에서 여자의 육체적 장애는, 여자 쪽에 있는 너무도 명백한 결여 때문에 남자가 자신에게는 결여가 없다고 믿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는 딱히 둘 중 어느 한 사람에게 육체적 장애가 있지 않은 경우에도 언제나 발생할 수 있는 결여의 불균형이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 더 명백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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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렇게 자신의 결여를 깨달을 때의 그 절박함으로 누군가를 부른다.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향해 할 수 있는 가장 간절한 말, '나도 너를 사랑해'라는 말의 속뜻은 바로 이것이다.

'나는 결여다.'


 

소설은 정말 열심히 재밌게 읽었다. 크게 막히는 부분 없이 슬슬 넘겼던 것 같다. 대충 마약 만들어서 파는 돈 많은 주인공과-당연히 유능한 범죄직이므로 모럴없고 돈도 잘 번다- 작업하러 들어온 섬의 노예 주인수의 이야기다. 해피엔딩에 할리킹 구원서사라고 떡하니 적혀있기 때문에 읽지 않아도 공이 수를 어떻게든 노예 생활 탈피하게 해주겠거니 싶어 마음에 안정이 찾아온다.

 

사랑의 성립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 점에 있어서 적해도의 장점은 사람새끼가 그러면 안되지 하고 기현오를 후려갈기는 (범죄자가 아닌 건 아님) 정태가 있다는 거고 기현오도 이러면 안된다는 어떤 기준이 있다는 거다. 그리고 2부에 구원서사의 단점을 한 번 짚어준다는 것도. 구원 서사 속 이 사람이 없으면 난 죽을 거야와 함께 있고 싶어를 구분해준게 정말 마음에 들었다.

 

다만 위의 인용을 빌려서, 적해도에서 이매(주인수)의 보이는 '결여'가 너무 크고 명백했다... 기현오(주인공)의 결여가 없다는 건 아니다. 애초에 범죄자가 아닌가. 더 큰 악이라고 명시될만큼, 리디 태그 #모럴리스 #복흑/계략공인만큼 하자가 많은 인간인데 기현오씨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내 좃대로 해야지 하고 엇나간 놈이고 이매는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었으니까... 

 

보통 계략공이란 주인수의 선택지는 모조리 제거하고 네 선택이라고 가스라이팅이나 하며 상대를 갖기 위해 상대의 유일한 필요가 되곤 한다. 당장 아래서 호랑이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데 동앗줄이 내려오면 썩어도 잡아야지 뭐 어째 싶지만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긴 좀 무리가 있다. 사람은 공기가 없으면 죽는데 그렇다고 우리가 공기를 사랑한다고 말하진 않으니까. 하지만 기현오는 할 수 있는 것들을 쥐여주고 지가 제일 착한척 다정한척 잘해줘서 자기가 1번이 되는 걸 노리는 계략공이다. 인간으로서는 하자가 많지만 계략공으로서는 참 된 계략공이 아닐 수 없다. 좋았던 공의 대사를 첨부해본다.

 

 

기현오와 이매의 사랑은 1부 막바지에 시작해서 2부에서 완성되는게 아닐까? 이매한테 기현오는 이보다 완벽할 수 없는 사람이다.(1부 기준으로)... 하지만 1부 막바지 이매는 기현오의 잔혹함, 결여를 마주하게 된다. 이매는 선악은 몰라도 오만 폭력의 피해자라 못배워도 그게 단점이라는 건 안다. 그리고 2부에선 그게 불법이라는 사실도 배운다.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고, 본인에게 주어진 복수의 선택지(다른 섬노들은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아도 된다는 선택지를 몸소 보여줬으니까 일단은...)에서도 능동적으로 행동한다.

 

결과적으로 이매의 결여는 그의 외적 환경을 제외하면 그 외적 환경에 지나치게 오래 노출된 탓인지 본인도 모럴이 좀 낮다는... 그래서 선으로 이매를 구하려 했다면 이매를 통째로 부정하게 되는 그런 류고 기현오의 결여는... 그딴 식으로 사랑하면 안되는게 아닐까 싶지만. 그래서 이매가 손을 내밀 수 있는 건 기현오 밖에 없고(근거: 기현오가 약하고 눈이 돌았을때 정태를 꼬와하던 이매) 기현오의 사랑을 기뻐할 수 있는 건 이매 밖에 없는 서로를 향한 간절함... 나는 이걸 염병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이매의 결여가 클 필요가 있을까 싶어지는 것이다... 구원서사를 위해 캐릭터에게 주어져도 괜찮을 불행의 한도는 어느정도일까? 행복이 약속되어 있다면 좀 더 괴롭게 둬도 되는 걸까... 본인이 무던하면 라이트하게 넘길 수 있지만...괴로워하잖냐 행복하라고... 세상에는 당연히 많은 취향이 있고 필요 이상의 불행. 그런 사치를 #피폐물 따위의 태그로 즐기는 사람이 많은 것 물론 안다. 나도 본다. 하지만... 그게 사람 취급 못받아서 기본권도 모르는... 당하는게 폭력인지도 모르는 지경이면 나는 아무래도 편히 즐길 수는 없는 모양이다. 결여는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빠져서 없거나 모자람을 뜻하는데 마땅한 것조차 모르면 괴롭잖냐... 

 

대충 이런 이유로 둘 사이의 결여의 불균형... 간절함의 불균형이 완독 후에 씁쓸하게 남아있다... 

 

생각해보니 얼마 전 모 자캐를 굴린 내가 이런 말 하는 것도 상당히 현대미술이다.

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어준 소설, 적해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정태의 입담 개그코드가 저와 맞네요 좀 저급하고... 전 저급한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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