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l Up Black Cat 키티일기장

 

※ 주의 소재: 서양근대풍 가상 시대물. 배경에 따른 성차별적 사회 / 아동 학대(애정에 기반했다는 식의 미화로 보일 수 있는 요소가 분명 있음) / 우울증 등


디키탈리스 작가님의 신작을 읽었다. 이분의 소설 몇을 즐겁게 읽음+안갯길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어쩐지 음기 충만한 제목에 홀려서 장바구니에 넣은 결과 간만에 리뷰를 쓴다. 사실 그냥 리뷰가 밀린 거지만...

 

책을 살 때 작품소개와 리뷰와 별점에 아주 연연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이번에도 리뷰를 구경했는데, 이번에 구매욕을 당긴 감사한 리뷰는 이것:

남주가 너무 불쌍해요.

불행한 남주가 나를 흥분시키는 건 아니지만 홍보 문구가 너같이 냉정한 사람을 사랑한 것을 후회해. 였기 때문에ㅡ오호라 냉정녀와 불쌍남이라. 작가님의 취향이 제법 유구한가 싶다.

 

하지만 읽고 나니 또 심란해지고 말았다. 투디의 비극과 망가진 여인(남자도 좋지만 이 둘은 분리할 필요가 있다)을 향한 사랑과 이것들이 탄생하기 위해 필요한 억압...가부장제와 후진 인권을 향한 증오 사이에서...망가진 여인에게서 태어난 소년 소녀에게로 대물림되는 불행을 음미하며... 이래도 되는 건가? 하고 이카리 겐도 포즈로 존재하는 중이랄까.

 

미리보기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작품 초반은 남주의 어머니 시점 일기로 진행된다. 아동 학대의 가해자 시점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주의를 달아둔다.

 

※이하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라 접어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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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 이 이미지를 올리면서 괴로워했다. 섭남재질 대사같지만 맥락을 알고보면 이 안에 어머니의 그림자 속에서 울고 있는 소년이 있으므로 어디 말도 못하고 그저 심란해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여인들을 사랑하는 남자와 평등하지 않은 사회에 짓눌려 만들어진 냉정함이라는 후천적 가면을 쓴 여자들...빌어먹을 세상에서 사랑을 해버려서 꾸역꾸역 살게 된 사람들...

 

남주의 어머니... 이렇게 부르지 말까? 하여튼. 좋았고 동시에 몹시 씁쓸했던 점은 역시 밀로 부인과 신시가 닮아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머리로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지만 불행이 얼마나 다양하든 불행한 사람의 형태는 일관적일지도 모른다. 

증오와 사랑은 종이 한장 차이라고, 사랑한만큼 증오하게 되고 증오한 만큼 사랑을 구하고 싶어서... 신시와 레이지가 서로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망했어! 하는 상처투성이 고백을 보는 와중에 냉정하다는 단어를 잠깐 생각해봤는데, 정이 냉하다는 단어니까 역시 냉정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정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결론에 다다랐다. 무정한 신시는 레이지를 스쳐갔을지도 모르지만 냉정한 신시는 지나치지 못하고 레이지를 침대로 끌어들여 상처입혔다. 하지만 정이라는게 기본적으로 내가 품고 있는 나의 일부라서, 냉정하게 대하려 할수록 신시는 더 레이지를 놓을 수 없게 되고...

 

둘이 그렇게 지지고 볶든 말든(이 둘을 사랑함)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제이다. 난... 임신물도 육아물도 좋아하지 않는다. 로맨스 장르에서 임신과 아이가 얼마나 쉽게 수단화되는지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가 않아서... 특히 꼴불견인 것은 아이에게도 질투하는 남주 뭐 이런 구도인데(진심이면 좀 추잡하지않나?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성인인 판타지물이라면 참작해보겠다) ..............이런 내 개인적인 호불호와 별개로 소설 속에서 제이가 정말 중요하고 큰 장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신시와 밀로부인을 비교하게 되는 것도, 사랑으로 인생이 망한 신시의 원동력이 되는 것도, 그리고 레이지가 제이를 대하는 태도도... 제이가 유령을 본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도 제이가 있어서 보게 된 것들이 너무 중요했단 뜻이다. 소설 속 제이가 신시를 사랑하고 레이지에게 안길 때마다 날 몹시 슬프게 했어도...

 

이건 특히나 개인적인 감상인데, 보는 내내 신시와 레이지, 제이까지 전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그게 반드시 합치는 방향이 아닐지라도... 해방감을 느꼈으면 했다) 했지만... 그게 밀로 부인에 대한 용서로 이루어지길 바라진 않은 것 같다... 내가 그렇게까지 포용적이지 못한 탓일까??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은 좀. 그런 기분... 밀로 부인과 레이지가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한게 그래서 좋았는지도 모른다. 죽은 사람은 더는 무언가 바꿀 수 없다. 부인의 편지가 변화를 만들었다면 그건 그게 그녀가 생전에 이룬 일이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신시는 부모님이 그보다도 일찍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유령이라는 형태로 제이를 통해 어른들이 나타났던 거고...


소설은 해피엔딩에 나는 꽉 닫힌 해피엔딩을 사랑하는 사람인데 기묘하게 가슴이 허하다. 이 찝찝한 해피엔딩이 좀 더 발전하면 제인에어가 되는걸까? 안갯길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양지로 나아가지 말고 좀더 음울하고 눅눅한 저택을 유지해줬으면 하는... 아마도 이해는 가지만 용서하고 싶지 않은 주관적 감상에서 나온 미련이 남은 모양이다. 

 

역시 사랑이 좋다. 별로 아름답지 않고 사람을 진창으로 처박고 상처입히고 불행하게 하고 죽음으로 떠밀어도... 삶에 매어두는 것도 종종 사랑이고 미래를 꿈꾸게 하는 것도 사랑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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